법정이라는 공간은 원래 엄숙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판사가 망치를 두드리면 모두가 숨죽이고, 증인은 선서를 하며 손을 들어 올린다. 그런데 가끔은 이 엄숙한 공간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아니,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실제로 펼쳐지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재판에서 한 유명 인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가방을 받았지만 출처는 몰랐다”고 증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 유명 인사는 값비싼 명품 가방을 선물로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누가 줬는지는 몰랐다고 말한 모양이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선물을 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받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 가방이 로저 비비에라는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라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겨레 기사에서는 이 증언이 “나중에 인식했다”는 식으로 포장됐다고 전한다. 흠, 참 교묘한 표현이다.
사실 이런 일은 비단 정치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해프닝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동네 잔치에 갔는데 누군가 잘못 알고 축의금을 냈다는 둥, 회사에서 돌아온 선물 세트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둥. 하지만 그 규모가 커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수십억 원대의 재산 분할을 두고 벌이는 부부 간 소송전, 북한에서 파견된 특검 운운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궤변까지, 법정은 그야말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다. 한겨레는 이런 발언들이 법정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전하는데, 정말 이게 한 나라의 법정에서 나올 소리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내가 살면서 법정에 직접 가본 적은 딱 한 번 있다. 교통사고 관련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법정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내가 아는 사실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변호사가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에 긴장해서 횡설수설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대단함’이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법정에서의 증언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증죄라는 무거운 죄목이 기다리고 있고, 한마디 한마디가 사건의 향방을 가를 수 있다. 둘째, 언론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매체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겨레]와 [동아일보]의 기사를 모두 읽고 나서야 겨우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만약 이런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법적 문제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변호사 같은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모든 사람에게 변호사를 찾으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런 대형 사건에 휘말릴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럴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법정에 서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지, 거짓과 궤변으로 얼룩진 무대가 아니다. 아무리 화려한 말로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진실의 힘을 믿고, 조금 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번 사건들을 통해 법정의 엄숙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다음에 또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된다면, 나는 그저 한숨만 쉬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정직함, 책임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 이런 기본적인 가치들이 지켜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